일본땅에 사는 한국사람들의 교육와 정체성: 첫 번째 파트
저는 다시 한국어를 말하기 대회에 참가하고 있어요! 하지만 제 발표는 아주 길어서, 첫 번째 파트와 두 번째 파트가 따로따로 올릴거에요. 둘 다 고쳐주실 수 있으면 아주 감사하겠지만, 하나밖에 고쳐주실 수 없으면 감사하겠어요! 아주 어려운 주제 때문에, 정말로 도움이 필요해요! 고맙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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일본땅에 사는 한국사람들의 교육와 정체성: 첫 번째 파트
The Education and Identity of Koreans who Live in Japan: Part 1
디아스포라 공동체에 있는 사람들은 자주 생활방법에 대한 어려운 결정해야 됩니다.
People who live in diaspora communities are often forced to make difficult decisions about the way they live their life.
이 결정들은 자신의 민족성과 개인적인 정체성에 대한 생각에 영향을 미칠 수 있슴니다.
These decisions can affect their thoughts about their own ethnicity and personal identity.
이민들과 그의 후손들은 다른 나라에서 거의 매일매일 동화될지 고국의 풍습을 지키려고 할지 선택해야 해서 그들의 정체성을 결정하는 데는 중요한 역할을 합니다.
Immigrants and their descendants have to make decisions almost every day in their new country about whether they’ll assimilate or try to preserve the customs of their home country, which plays an important role in the determination of their identity.
그래도, 많은 디아스포라 공동체에서는 이 결정들이 자신의 선택보다 훨씬 더 큰 쟁점입니다.
However, in many diaspora communities, these decisions can be far more than a personal issue.
재일교포라고 부르는 일본에 사는 한국 국민들은 이 것의 아주 재미있는 본보기입니다.
Koreans living in Japan are an interesting example of this.
한국과 일본의 역사와 문화 때문에 그 한국 국민들에게 일본에서 동화될지 고국의 문화를 지키려고 할지 결정들은 민족주의라는 중대한 문제가 됐습니다.
Due to Korea and Japan’s history and culture, the decision to assimilate or preserve the homeland’s culture for these Koreans became a grave issue of nationalism.
2차 대전 후에, 2백만 넘는 한국 국민들이 일본에 샀습니다.
At the end of World War II, over two million Koreans resided in Japan.
이 한국 국민들 거의 다 일제 식민지 시대에 일을 찾으러 일본에 간 노동자나 2차에 일본의 육군에 징집된 사람입니다.
These Koreans were mostly labourers who had moved to Japan in search of work during the colonial period, or been forcibly drafted by the Japanese during the war.
해방 직후에 대부분 한국으로 송환했는데, 그 때의 일본에 비해 대한민국의 안 좋은 경제와 정치 상황 때문에 60만 한국 국민들이 머무르도록 선택했습니다.
After liberation, most of them repatriated to South Korea, however 600,000 chose to remain in Japan, mostly because of the unfavourable economic and political situation in South Korea at the time compared to that in Japan.
그렇게 함으로써, 이 한국 국민들 민족성과 정체성 위기에 직면해 있었습니다.
. By deciding to stay in Japan, these Koreans faced issues of identity and ethnicity.
이 전에, 그저 일 때문에 일본에 일시적으로 샀는데 그때에 그들의 한국에서 태어났고 또 조상은 한국에서 파묻혔을지라도 그 때 그 한국 국민들은 어쩌면 일본에서 평생을 살 것인 걸 깨달았습니다.
Before, they had just been living temporarily within Japan for work, but then they realised that they might live permanently in Japan, despite that they were born in Korea and their ancestors were buried there.
많은 재일교포들은 한일합방과 1923년의 대진화 동안 한국사람들을 대학살같은 사건들이 오랫동안 지속되는 기억들 통해 민족성을 생각해서 이 가망은 물론 바람직하지 않은 가망였습니다.
To many Koreans in Japan, this was of course not an acceptable prospect, due to the fact that they had come to think of their national identity through their lasting memories of events like the Japanese annexation of Korea and the massacre of Koreans during the 1923 earthquake.
또, 거의 다 일본 사람들 일본 민족성은 균질해야 하는 것을 믿어서 외국인들 일본에서 환영받지 못하기 때문에 재일교포들은 차별을 받았습니다.
Also, Koreans in Japan were discriminated against because almost all Japanese people believed that the Japanese national ethnicity had to be homogeneous, so foreigners were not welcome in Japan.
그래서 당연히 많은 재일교포들는 그들의 일본생활은 그저 일시적인 신세로 계속 생각하고 일본에서 사는 동안 한국의 민족성을 지키기를 위해 한국의 풍습을 따르고 한국어로 말하고 싶어했습니다.
Therefore understandably, many Koreans in Japan wanted to think of their life in Japan as only a temporary situation, and wanted to continue to preserve their Korean national identity while they lived in Japan by following Korean customs and speaking Korean.
재일교포의 필요로 하는 것을 충족시키려고 노력한 단체들이 창건됬는데 특히 재일교포 1세들의 후손들에게 한국어를 가르치게끔 만든 학교들 창건됬습니다.
Organizations were established that were designed to fulfil the needs of Koreans in Japan, especially schools that aimed to teach Korean to the descendants of first generation Koreans in Japan.
결국 적당할 때에 한국으로 송환할 것을 믿음으로 다 했습니다.
They did all this while believing that they would ultimately repatriate to South Korea at the right time.
그래서, 한국 국민들 일본땅에서 민족성을 지키기 위해 열심히 해야 한다는 생각했습니다.
Therefore Koreans in Japan thought that they needed to work hard to preserve their Korean identity.
최근에 저는 혹가이도에 있는 재일교포 아이들에게 한국어를 가르치고 그들의 한국 민족성을 촉진하는 걸 목표하는 학교에 대한 아주 재미있는 “우리 학교”라고 부르는 영화를 봤습니다.
Recently, I watched a very interesting movie entitled "Our School" about a school in Hokkaido that aims to teach Korean children in Japan the Korean language, as well as aims to encourage their sense of national identity.
그 학생들이 집에 일본어로 말하고, 일본 TV 프로들을 보고, 일본 음식을 먹고, 일본인 친구들이 있습니다.
These students speak Japanese at home, watch Japanese television shows, eat Japanese food, and have Japanese friends.
일본어로 말할 때, 마음이 가장 편합니다.
They are at their most comfortable when speaking Japanese.
하지만, 한국 핏줄 때문에 그의 가족은 한국사람을 알아봅니다.
However, because of their Korean blood, their families think of them as Koreans.
일본에서 한국사람을 차별이 흔하고 널리 퍼져서 일본 아이들 “한국인”다고 이름을 모욕으로 말하는데 일본땅에서 한국국민 아이들으로 성장하기가 아주 어려운 것 같습니다.
The discrimination of Koreans in Japan is common and widespread, to the point that Japanese children use "Korean" as a curse word, so being raised as a Korean child in Japan must be very difficult.
사실은, 어떤 학생들이 일본 사람인다고 믿음으로 성장해서, 진짜 한국국민인다고 들었을 때, 정체성 위기를 겪었습니다.
In fact, some children are raised believing that they are Japanese, so when they find out that they are really Korean nationals, they experience an identity crisis.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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일본땅에 사는 한국사람들의 교육와 정체성: 첫 번째 파트
The Education and Identity of Koreans who Live in Japan: Part 1
디아스포라 공동체에 있는 사람들은 자주 생활방법에 대한 어려운 결정해야 됩니다.
People who live in diaspora communities are often forced to make difficult decisions about the way they live their life.
이 결정들은 자신의 민족성과 개인적인 정체성에 대한 생각에 영향을 미칠 수 있슴니다.
These decisions can affect their thoughts about their own ethnicity and personal identity.
이민들과 그의 후손들은 다른 나라에서 거의 매일매일 동화될지 고국의 풍습을 지키려고 할지 선택해야 해서 그들의 정체성을 결정하는 데는 중요한 역할을 합니다.
Immigrants and their descendants have to make decisions almost every day in their new country about whether they’ll assimilate or try to preserve the customs of their home country, which plays an important role in the determination of their identity.
그래도, 많은 디아스포라 공동체에서는 이 결정들이 자신의 선택보다 훨씬 더 큰 쟁점입니다.
However, in many diaspora communities, these decisions can be far more than a personal issue.
재일교포라고 부르는 일본에 사는 한국 국민들은 이 것의 아주 재미있는 본보기입니다.
Koreans living in Japan are an interesting example of this.
한국과 일본의 역사와 문화 때문에 그 한국 국민들에게 일본에서 동화될지 고국의 문화를 지키려고 할지 결정들은 민족주의라는 중대한 문제가 됐습니다.
Due to Korea and Japan’s history and culture, the decision to assimilate or preserve the homeland’s culture for these Koreans became a grave issue of nationalism.
2차 대전 후에, 2백만 넘는 한국 국민들이 일본에 샀습니다.
At the end of World War II, over two million Koreans resided in Japan.
이 한국 국민들 거의 다 일제 식민지 시대에 일을 찾으러 일본에 간 노동자나 2차에 일본의 육군에 징집된 사람입니다.
These Koreans were mostly labourers who had moved to Japan in search of work during the colonial period, or been forcibly drafted by the Japanese during the war.
해방 직후에 대부분 한국으로 송환했는데, 그 때의 일본에 비해 대한민국의 안 좋은 경제와 정치 상황 때문에 60만 한국 국민들이 머무르도록 선택했습니다.
After liberation, most of them repatriated to South Korea, however 600,000 chose to remain in Japan, mostly because of the unfavourable economic and political situation in South Korea at the time compared to that in Japan.
그렇게 함으로써, 이 한국 국민들 민족성과 정체성 위기에 직면해 있었습니다.
. By deciding to stay in Japan, these Koreans faced issues of identity and ethnicity.
이 전에, 그저 일 때문에 일본에 일시적으로 샀는데 그때에 그들의 한국에서 태어났고 또 조상은 한국에서 파묻혔을지라도 그 때 그 한국 국민들은 어쩌면 일본에서 평생을 살 것인 걸 깨달았습니다.
Before, they had just been living temporarily within Japan for work, but then they realised that they might live permanently in Japan, despite that they were born in Korea and their ancestors were buried there.
많은 재일교포들은 한일합방과 1923년의 대진화 동안 한국사람들을 대학살같은 사건들이 오랫동안 지속되는 기억들 통해 민족성을 생각해서 이 가망은 물론 바람직하지 않은 가망였습니다.
To many Koreans in Japan, this was of course not an acceptable prospect, due to the fact that they had come to think of their national identity through their lasting memories of events like the Japanese annexation of Korea and the massacre of Koreans during the 1923 earthquake.
또, 거의 다 일본 사람들 일본 민족성은 균질해야 하는 것을 믿어서 외국인들 일본에서 환영받지 못하기 때문에 재일교포들은 차별을 받았습니다.
Also, Koreans in Japan were discriminated against because almost all Japanese people believed that the Japanese national ethnicity had to be homogeneous, so foreigners were not welcome in Japan.
그래서 당연히 많은 재일교포들는 그들의 일본생활은 그저 일시적인 신세로 계속 생각하고 일본에서 사는 동안 한국의 민족성을 지키기를 위해 한국의 풍습을 따르고 한국어로 말하고 싶어했습니다.
Therefore understandably, many Koreans in Japan wanted to think of their life in Japan as only a temporary situation, and wanted to continue to preserve their Korean national identity while they lived in Japan by following Korean customs and speaking Korean.
재일교포의 필요로 하는 것을 충족시키려고 노력한 단체들이 창건됬는데 특히 재일교포 1세들의 후손들에게 한국어를 가르치게끔 만든 학교들 창건됬습니다.
Organizations were established that were designed to fulfil the needs of Koreans in Japan, especially schools that aimed to teach Korean to the descendants of first generation Koreans in Japan.
결국 적당할 때에 한국으로 송환할 것을 믿음으로 다 했습니다.
They did all this while believing that they would ultimately repatriate to South Korea at the right time.
그래서, 한국 국민들 일본땅에서 민족성을 지키기 위해 열심히 해야 한다는 생각했습니다.
Therefore Koreans in Japan thought that they needed to work hard to preserve their Korean identity.
최근에 저는 혹가이도에 있는 재일교포 아이들에게 한국어를 가르치고 그들의 한국 민족성을 촉진하는 걸 목표하는 학교에 대한 아주 재미있는 “우리 학교”라고 부르는 영화를 봤습니다.
Recently, I watched a very interesting movie entitled "Our School" about a school in Hokkaido that aims to teach Korean children in Japan the Korean language, as well as aims to encourage their sense of national identity.
그 학생들이 집에 일본어로 말하고, 일본 TV 프로들을 보고, 일본 음식을 먹고, 일본인 친구들이 있습니다.
These students speak Japanese at home, watch Japanese television shows, eat Japanese food, and have Japanese friends.
일본어로 말할 때, 마음이 가장 편합니다.
They are at their most comfortable when speaking Japanese.
하지만, 한국 핏줄 때문에 그의 가족은 한국사람을 알아봅니다.
However, because of their Korean blood, their families think of them as Koreans.
일본에서 한국사람을 차별이 흔하고 널리 퍼져서 일본 아이들 “한국인”다고 이름을 모욕으로 말하는데 일본땅에서 한국국민 아이들으로 성장하기가 아주 어려운 것 같습니다.
The discrimination of Koreans in Japan is common and widespread, to the point that Japanese children use "Korean" as a curse word, so being raised as a Korean child in Japan must be very difficult.
사실은, 어떤 학생들이 일본 사람인다고 믿음으로 성장해서, 진짜 한국국민인다고 들었을 때, 정체성 위기를 겪었습니다.
In fact, some children are raised believing that they are Japanese, so when they find out that they are really Korean nationals, they experience an identity crisis.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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저는 다시 한국어를 말하기 대회에 참가하고 있어요!
하지만 제 발표는 아주 길어서, 첫 번째 파트와 두 번째 파트를 따로따로 올릴거에요.
둘 다 고쳐주실 수 있으면 아주 감사하겠지만, 하나밖에 고쳐주실 수 없어도 감사하겠어요!
아주 어려운 주제이기 때문에, 정말로 도움이 필요해요!
디아스포라 공동체에 있는 사람들은 자주 생활 방식에 대한 어려운 결정을 내려야 합니다.("생활방법" 도 틀리지는 않으나, "방법" 은 "방식" 보다는 약간 더 사소한 일에 대하여 사용하는 단어입니다.)
이 결정들은 자신의 민족성과 개인적인 정체성에 대한 생각에 영향을 미칠 수 있습니다.
이민자들과 그의 후손들은 다른 나라에 동화될지, 아니면 고국의 풍습을 지키려고 할지에 대해, 그들의 정체성을 결정하는 데는 중요한 역할을 하는 선택을 거의 매일매일 해야 합니다.(문장이 너무 길죠? "이민자들과 그의 후손들은 다른 나라에 동화될지, 아니면 고국의 풍습을 지키려고 할지에 대해 거의 매일매일 선택을 해야 합니다. 그건 그들의 정체성을 결정하는 데 중요한 역할을 하는 것입니다." 라고 하시는 게 낫겠습니다.)
그래도, 많은 디아스포라 공동체에서는 이 결정들이 자신의 선택보다 훨씬 더 큰 쟁점입니다.(이러한 결정들은 단지 개인의 선택보다는 큰 문제입니다.)
재일교포라고 부르는 일본에 사는 한국 국민들은 이것의 아주 재미있는 본보기입니다.
한국과 일본의 역사와 문화 때문에 그 한국 국민들에게 일본에서 동화될지 고국의 문화를 지키려고 할지 하는 결정들은 민족주의적인 중대한 문제가 됐습니다.
2차 대전 후에, 2백만 명이 넘는 한국 국민들이 일본에 정착하였습니다.
이 한국 국민들은 거의 다 일제 식민지 시대에 일을 찾으러 일본에 간 노동자나 2차 세계대전 때에 일본의 육군에 징집된 사람입니다.
해방 직후에 대부분 한국으로 송환되었는데, 그 때의 일본에 비해 대한민국의 안 좋은 경제와 정치 상황 때문에 60만 명의 한국 국민들이 일본에 머무르기로 선택했습니다.
그렇게 함으로써, 이 한국 국민들은 민족성과 정체성 위기에 직면해 있었습니다.
이전에는, 그저 일 때문에 일본에 일시적으로 살았지만, 그때에 그들의 한국에서 태어났고 또 조상은 한국에서 파묻혔을지라도 그 때 그 한국 국민들은 어쩌면 일본에서 평생을 살 것인 걸 깨달았습니다.("그들이 한국에서 태어났고 또 조상들은 한국 땅에 묻혔을지라도, 그들은 일본에서 영원히 살 수도 있을 거라는 걸 깨달았습니다.")
많은 재일교포들은 한일합방과 1923년의 대진화 동안 한국사람들을 대학살같은 사건들이 오랫동안 지속되는 기억들 통해 민족성을 생각해서 이 가망은 물론 바람직하지 않은 가망였습니다. (-> 이대로라면, 한국인 입장에서는 무슨 말인지 한 번에 알아듣기가 어렵습니다.)한일합방과 1923년 관동대지진 때 많은 한국인들을 학살한 사건들이 오랫동안 기억에 남아 있었고, 그 기억을 통해 자신들의 민족성에 대해 숙고하던 재일교포들에게는, 당연히 이것은 납득할 수 없는 미래였습니다.
또, 대부분의 일본인들은, 일본의 민족성이 균등해야 한다고 믿었기에, 외국인들은 일본에서 환영받지 못했고, 재일교포들 역시 차별을 받았습니다.
그래서 당연히 많은 재일교포들은, 그들의 일본생활을 그저 일시적인 상황일 뿐이라고 생각하길 원했으며, 일본에서 사는 동안 한국의 민족성을 지키기를 위해 한국의 풍습을 따르고 한국어로 말하고 싶어했습니다.
재일교포들이 필요로 하는 것을 충족시키기 위한 단체들이 창건됐는데, 특히 재일교포 1세들의 후손들에게 한국어를 가르치게끔 만든 학교들이 세워졌습니다.
결국 적당한 때가 오면, 한국으로 송환될 것이라고 믿으며 이 모든 일들을 다 했습니다.
그래서, 한국 국민들은 일본땅에서 민족성을 지키기 위해 열심히 일해야 한다고 생각했습니다.
최근에 저는 홋카이도에 있는 재일교포 아이들에게 한국어를 가르치고 그들의 한국 민족성을 촉진하는 걸 목표로 하는 학교에 대한 아주 재미있는 “우리 학교” 라고 부르는 영화를 봤습니다.
그 학생들은 집에서 일본어로 말하고, 일본 TV 프로들을 보고, 일본 음식을 먹고, 일본인 친구들과 어울립니다.
일본에서의 한국인 차별은 매우 흔하고 여기저기에서 찾아볼 수 있었기 때문에, 일본 아이들은 "한국인" 이라는 단어를 욕처럼 사용합니다. 일본땅에서 한국국민 아이들으로 성장하기가 아주 어려운 것 같습니다.
사실 어떤 학생들은 자기들이 일본인이라고 믿으며 성장했기 때문에, 원래는 자신들이 한국인이라는 것을 알게 되었을 때, 심한 정체성 위기를 겪었습니다.
일본땅에 사는 한국사람들의 교육와과 정체성: 첫 번째 파트
저는 다시또 한국어를 말하기 대회에 참가하고 있어요!
하지만 제 발표는 아주 길어서, 첫 번째 파트와 두 번째 파트가 따로따로로 나눠서 올릴거에요.
둘 다 고쳐주실 수 있으면 아주 감사하겠지만, 하나밖에 고쳐주실 수 없으면만 고쳐 주시더라도 매우 감사하겠어요!
아주 어려운 주제이기 때문에, 정말로 도움이 필요해요!
일본땅에 사는 한국사람들의 교육와과 정체성: 첫 번째 파트
디아스포라 공동체에 있는 사람들은 자주 생활방법에 대한 어려운 결정을 해야만 됩합니다.
이 결정들은 자신의 민족성과 개인적인 정체성에 대한 생각에 영향을 미칠 수 있슴습니다.
이민자들과 그의 후손들은 다른 나라에서 거의 매일매일 동화될지 고국의 풍습을 지키려고 할지 선택해야 해서 그들의 정체성을 결정하는 데는 중요한 역할을 합니다.이민자들과 그의 후손들은 그들의 정체성을 결정하는 데 중요한 역할을 하는 그 자신들 고국의 문화를 유지 해야 할지 혹은 새로운 나라 문화에 흡수(동화)될지에 대해 끊임없는 결정을 해야만 합니다.
그래도, 많은 디아스포라 공동체에서는 이 결정들이 자신의 선택보다 훨씬 더 큰 쟁점입니다.(여기서는 "그래도"라는 접속사가 빠지는게 좀 더 자연 스러울 듯 합니다.) 많은 디아스포라 공동체에서는 이 결정들이 각각의 개인들의 논쟁보다 더 중요하게 여겨 집니다.-직역을 하면 좀 어색하게 변해요. 그래서 자연스럽게 다시 문장을 만들었어요.
재일교포라고 부르는불리는 일본에 사는 한국 국민들은 이 것의 아주 재미있는 본보기입니다.가 됩니다.
한국과 일본의 역사와 문화 때문에 그 한국 국민들에게제일 교포들에게는 일본에서 동화될지 고국의 문화를 지키려고 할지에 대한 결정들은 민족주의라는 중대한 문제가 됐습니다.
2차 대전 후에, 2백만이 넘는 한국 국민들이 일본에 샀으로 건너 갔습니다.
이 한국 국민들사람들 대부분은 거의 다 일제 식민지 시대에 일을 찾으러 일본에 간 노동자거나 2차에 일본의 육군에 징집된 사람들 입니다.
해방 직후에 대부분 한국으로 송환했는데되었지만,, 그 때의 일본에 비해 대한민국의 안 좋은 경제와 정치 상황 때문에 60만 한국 국민들이 머무르도록은 일본에 머무를것을 선택했습니다.
그렇게 함으로써, 이 한국 국민들 사람들은 민족성과 정체성 위기에 직면해 있었습니다.
이 전에, 그저 일 때문에 일본에 일시적으로 샀는데 그때에 그들의 한국에서 태어났고 또 조상은 한국에서 파묻혔을지라도 그 때 그 한국 국민들은 어쩌면 일본에서 평생을 살 것인 걸 깨달았습니다.죄송! 못고치겠어요. 아래 문장에 다시 문장을 만들어 볼게요.
Before, they had just been living temporarily within Japan for work, but then they realised that they might live permanently in Japan, despite that they were born in Korea and their ancestors were buried there.만약 그들이 그 전에 일본으로 일을 하기 위해 임시적으로 이주 했던거라면, 그들이 한국에서 태어났고, 또 그들의 조상들이 한국땅에 묻혀 있다 할지라도, 그들이 영원히 일본에서 살지도 모른다고 생각했을지도 모릅니다.
많은 재일교포들은 한일합방과 1923년의 대지진화 동안 한국사람들을 대학살같은 사건들이 오랫동안 지속되는 기억들 통해 민족성을 생각해서 이 가망은 물론 바람직하지 않은 가망였습니다. 많은 재일 교포들은 이것에 수용할 만한 예상 때문이아니라, 한일합방과 1923년 대지진으로 인한 대량학살등과 같은 사건들이 기억속에서 그들의 국가 정체성에 영향을 미치는 사실 때문입니다.
또, 거의 다 대부분의 일본 사람들은 일본 민족성은 균질해야 하는 것을 믿어서하나여야 한다고 생각하기 때문에 외국인들은 일본에서 환영받지 못하기 때문에하고, 재일교포들은 차별을 받았습니다.
그래서 당연히 많은 재일교포들는 그들의 일본생활은 그저 일시적인 신세로 계속 생각하고 일본에서 사는 동안 한국의 민족성을 지키기를 위해 한국의 풍습을 따르고 한국어로 말하고 싶어했습니다.
재일교포의가 필요로 하는 것을 충족시키 려고노력한기 위한 단체들이 창건됬됐는데 특히 재일교포 1세들의 후손들에게 한국어를 가르치게끔 만든 학교들이 창건됬됐습니다.
결국 적당할 때에 한국으로 송환할 것을돌아 갈것이라는 믿음으로 다 했습니다.
그래서, 한국 국민들은 일본땅에서 민족성을 지키기 위해를 열심히 해야 한다는고 생각했습니다.
최근에 저는 혹가이도훗카이도에 있는 재일교포 아이들에게 한국어를 가르치고 그들의 한국 민족성을 촉진하는 걸 목표하는장려하는 학교에 대한 아주 재미있는 “우리 학교”라고 부르는 영화를 봤습니다.
그 학생들이은 집에서는 일본어로 말하고, 일본 TV 프로들을 보고, 일본 음식을 먹고, 일본인 친구들이 있습니다.
일본에서는 한국사람을 차별이 흔하고 심하고 널리 퍼져서 일본 아이들은 “한국인”다이라고 이름을 모욕적으로 말하는데 일본땅에서 한국국민 아이들으로 성장하기가 아주 어려운 것 같습니다.
사실은, 어떤 학생들이은 일본 사람인다고 믿음으로 이라고 믿고 성장해서했는데, 진짜 한국국민인다고 들었을 때이라는걸 알고, 정체성 위기를 겪었습니다.
잘 고쳐 졌을 지 자신이 없네요~