감사 감사 감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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Dec 08th 2011 10:51
중국의 근현대사는 주로 세 시기로 구분될 수 있고 1840-1949년, 1849-78년, 1978년-지금으로 나눌 수 있다고 생각한다. 먼저 1840년은 중국의 첫 번째 개혁개방이라고 생각할 수도 있고 하지만 1978년의 개혁개방과 달리 피동적인 개혁개방이라고 생각한다. 그래서 이 시기의 개혁개방을 강제한 서구는 주체가 되어 서구의 중국사 연구는 주로 중국을 객체로 보고 주체의 영향 하에 어떻게 봉건 사회에서 벗어나고 근대 사회에 진입한 것에 중점을 두고 있었다. 같은 식민지 운명을 가진 한국은 이 시기의 중국 역사 연구는 동정적이고 객관적인 시각으로 보고 있다고 생각한다. 한편 이 시기에 대한 중국 학자의 연구 흐름은 당연히 서구의 식민지 통치와 착취 하에 어떻게 반항하고 어떻게 이 비참한 운명 속에서 벗어나는 찬란한 투쟁사를 자랑하고 있다. 즉 서구를 만악의 타깃으로 삼고 무너질 때까지 계속 활을 쏘고 있었다.

특히 1921-49년의 중국사는 완전히 공산당을 주체로 어떻게 중화민족을 고난 속에서 구했는 지에 대해 다루고 있다. 공산당이 없었으면 새로운 중국이 없다는 의식이 이미 중국 사람 머리 속에 각인되고 있는 것 같다. 그래서 중국 젊은 사람들은 모택동에 대해 어떻게 생각하느냐 물어보면 그의 잘못보다 그의 공적이 먼저 떠올리고 감격의 마음을 품고 있다. 그리고 장개석은 초기에 얼마나 훌륭해도 호감을 갖지 못한다. 지금은 중국은 공산당 일당 집권하기 때문에 이런 역사의 연구 방향은 필요하고 사회를 안정시키는 데도 큰 역할을 한다. 그래서 이시기의 중국사 연구는 중국 학자에게 이미 틀에 국한되어 벗어나려고 해도 안 된다고 생각한다. 하지만 외국 학자들에게 이런 국한이 없어서 이런 시기의 중국사를 꼭 중국 공산당을 주체로 다룰 필요없다고 생각한다. 사실은 1949년 중화인민 공화국 성립 전에 계속 국제 사회에서 인정받는 중국 정부는 국민당 정부이고 공산당을 주체로 삼면 국제 교류 등에 관한 것은 공산당의 입장으로 설명하면 당연히 왜곡할 경우가 많고 잘 풀이할 수 없는 경우도 많다고 생각한다. 문제는 다른 시각으로 이 시기의 중국사 연구는 아마 중국에서 인정을 받지 못하고 계속 중국 국내 국민에게 영향을 미치지 못하다.

위에 보듯이 같은 시기에 대한 각국의 학자의 다른 입장으로 생긴 차이 때문에 서로를 비판하기도 한다. 예를 들면 이 시기의 중국 연구는 혁명사에 국한 되어 있고 중국사아니라 혁명사라 공산당사라고 부를 수 있다고 외국 학자들이 지적하고 있는 반면 중국은 외국들의 연구는 자신의 침략의 죄악을 덮으려고 만든 아름다운 거짓말이라고 반격했다.

1949-1978년의 중국사 연구는 주로 중국의 기존의 문서나 자료를 토대로 중국 학자는 객관적인 입장을 갖고 있지만 많지 않은 외국 학자들이 이 시기의 퇴보나 잘못을 과장한 경향도 보인다. 개혁개방 후에 국내의 중국 연구는 주로 개혁개방로 따라온 경제적인 번영을 다룬 반명 외국 학자는 주로 중국의 궐기로 인한 중국 위협론이 대두한다.